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평생 비웃음 속에 살아온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물론 수많은 대중들 역시 그가 1년 안에 망할거라고 얘기하며 코웃음을 쳤는데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유명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역대 한국 연예계 종사자 중에 수 조원 단위의 재산을 소유한 억만장자는 이 사람이 유일하다고 하는데.. 이 놀라운 인생역전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프로듀서이자 기업인 방시혁입니다.
오늘은 방시혁의 충격적인 과거와 더불어, 부와 명예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까지 쟁취한 그의 놀라운 근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방시혁의 놀라운 어린시절 일화
기획사 하이브를 설립한 프로듀서이자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방시혁은 1972년생으로 올해 만 50세입니다.
풍만한, 뭔가 피곤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 블롭피시 닮은 꼴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

그 또한 해당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동물의 이름은 잘 모르고요 네티즌들이 올린 사진을 봤었는데, 제가 봐도 똑같이 생겼더라고요”라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글을 완전히 깨우치곤 이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집중력도 좋고 속독이 뛰어나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었다고 합니다.
방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어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였다고 하며, 그 습관 때문에 어릴때 부터 너무 살이 찌는 게 문제였다고 하네요.
방시혁은 19살때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지 못해 재수를 하려고 했는데 재수가 너무 하기 싫어서 점수에 맞춰 미대를 가기로 마음 먹는데요.
처음에는 뜬금없이 미대를 간다는 그를 가족 전부가 무시하고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 방극윤은 고려대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행정고시 출신으로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지냈고, 엄마도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 외삼촌과 이모 일곱 명 중 다섯 명이 서울대 출신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결국 오랜 설득 끝에 미대에 진학한 방시혁은 의외로 예술이 본인의 적성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발견, 원래 좋아하던 음악 공부도 같이 시작하며 예술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수상 이후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매진, 무명 작곡가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다 1997년경 박진영에게 스카웃되어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석 프로듀서의 길로 들어서게 되죠.
이후 JYP에서 GOD, 비, 백지영 등 내노라하는 가수들의 곡을 프로듀싱하며 승승장구하던 방시혁.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던 것인지 그는 2005년 2월 본인의 사업체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HYBE)를 설립하게 되는데요.
당시 SM, YG, JYP를 넘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었던 방시혁은, 동방신기를 뛰어넘는 남자 아이돌을 만들겠다며 방탄소년단 기획하기에 이릅니다.
방탄소년단의 충격적인 데뷔 초 일화
그리하여 방탄소년단은 지난 2013년 지금과 같은 멤버 구성으로 데뷔 하였고, 방시혁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는데요.

아마 데뷔를 발표하고 단 한 번의 무대조차 오르지 않았는데 비난을 받았던 그룹은 방탄소년단이 유일무이 할 겁니다.
방탄소년단이 비난을 받았던 것은 당시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그룹명과 ‘힙합’ 음악을 지향하는 아이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익숙해져 괜찮은 느낌이 들지만 과거 ‘방탄소년단’ 이라는 그룹명이 처음 공개 되었을 때 대중들은 대부분 이름이 왜 저러냐는 반응이었죠.
또한 전문 래퍼가 아닌 일개 아이돌이 힙합과 랩을 지향한다는 점에 대해 업계의 평가 역시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방탄소년단은 안그래도 중소기획사의 열약한 환경과 더불어 대중들의 눈초리까지 받는 최악의 환경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당연히 1집의 결과는 참담할 정도였습니다. 음반 판매량은 극히 저조하였고 제대로 된 무대조차 몇 번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방시혁과 방탄 멤버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2집, 3집, 4집.. 계속해서 문을 두들기며 도전했습니다.
여기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바로 유튜브의 급성장과 함께 K-POP을 찾는 외국인들이 방탄소년단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유튜브를 자사 가수의 홍보수단으로 쓰는 곳은 소형 기획사인 빅히트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대박이 터집니다.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힙합, 랩 음악을 하는 방탄소년단이 K-POP의 인기에 더불어 폭발적인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죠.
유튜브의 엄청난 파급력 덕분에 방탄소년단의 모든 영상은 알고리즘을 타기 시작했고 팬덤 또한 급격하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여태까지 우리가 눈으로 봐온 기록들을 하나씩 써가면서 전세계 최정상의 가수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25살 연하 여자친구 만난다고 소문났었던 방시혁의 소름 돋는 재산 수준
한편 방탄소년단의 기적같은 성공으로 빅히트 엔터의 주가는 미친듯이 치솟기 시작했고, 당연히 대주주인 방시혁 대표의 재산 역시 나날이 불어났습니다.
방시혁은 하이브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보유한 주식 가액만 3조 원이 넘는다고 전해진 바 있는데요.
현재까지 알려진 재산만 해도 무려 4조 2천 200만 원으로 대한민국 재벌 12위의 의상을 떨쳤습니다.
방시혁이 보유한 한남동 고급빌라 시세는 135억 원으로 화장실만 다섯 개이며 주차 가능 대수만 6대하고 하며, 그리고 그는 LA에도 집이 있는데 5성급 호텔 시설의 대 저택이며 화장실만 9개라고 합니다.
연애 경험이 총 두 번이라고 밝힌 방시혁은 최근 사귄 여자친구가 그보다 무려 25살 연하의, 25세 모델이라는 소문이 업계에서 퍼지기 시작했는데요.

여친의 정체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자친구에 대한 진위 여부는 밝혀진 바 없으며, 일각에서는 방시혁 조카일 가능성도 제기되었습니다.
과거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원에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와 혼성그룹 에이트의 ‘밥만 잘 먹더라’를 만들었던 방시혁은, 최근에는 필라테스를 통해 처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 네티즌들에게 ‘연애하더니 살 빠졌네’ 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었죠.


모두가 잘 안될 것이라고 비웃었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의지로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방시혁.
하이브의 주식 이외에도 저작권으로만 매년 수백억에 달하는 돈을 벌고 있는 그는, 버는 만큼 배포도 어마무시하게 커졌기 때문에 지난해 10월 사랑의 열매를 통해 무려 50억에 달하는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하는데요.
앞으로도 전세계 문화산업을 선도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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